영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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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상을 바꾸는 조용한 힘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디를 가더라도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은 한 명 이상씩 꼭 있습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 말하는 거지?

그냥 좋게 말해도 되는데 항상 사람 열 받게 만든다말야.

 

대체 저렇게 앞뒤가 꽉 막혀 있어.

말이 통해야 말이지

소통이 되어야 말이지... 불통이야 불통...

 

도대체 왜 저렇게 이기적인지 모르겠어.

자기 밖에 몰라...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꼭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만 있습니까?

가깝게는 가족 중의 한 명일 수도 있고, 같은 직장 동료나 친구들일 수도 있습니다.

운동화 속에 모래와 같고,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들이 어디를 가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회사를 옮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혼이나 별거까지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은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1800년대를 살았던 어떤 한 사람도 우리와 비슷하게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는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도대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면 무엇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속에 풀어 놓았습니다.

그 소설이 약 200년 뒤에 영화화 되었습니다.

작년 말에 개봉이 된 레미제라블입니다.

패러디로 유명해진 첫 장면 한 번 보겠습니다.

 

S1. 시작 화면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고난과 고생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생해 보고 인생의 쓴맛을 보면 철이 들고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쓰디쓴 인생의 고생과 고난을 경험한다고 다 변화되겠습니까?

 

혹은 굳은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면 변화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리고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가지고 결심한다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겠습니까?

 

빅토르 위고는 장발장을 통해 그것으로는 변화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배고픈 조카를 위해 빵 하나 훔친 이유로 그는 19년 동안 노예와 같은 감옥 생활을 합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고생을 한 장발장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다짐하고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감옥보다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좌절하고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그의 결심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그가 바라던 새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일하게 자기를 받아준 주교, 먹여 주고 재워주고 사람답게 살갑게 대해 준 미리엘 주교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납니다.

그러다 다시 경찰에게 잡혀 끌려옵니다.

 

또 빅토르 위고가 말하는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 두 번째는 바로 엄격한 규율과 규칙입니다.

그는 자베르 경사를 통해 이것을 말해주고 싶어 합니다.

 

레미제라블은 불어로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비참한 사람 1등은 누구이겠습니까?

우리가 언뜻 보기에는 장발장이 비참한 사람 1등이라 생각합니다.

고작 빵 하나 때문에 19년간 비참한 감옥에서 짐승처럼 청춘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비참하지 않을 것 같은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카메라 줌인을 합니다.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자베르 경사입니다.

자베르는 정의의 화신입니다.

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을 통해서 사람과 세상이 변화된다고 철저히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신념이었습니다.

그는 장 발장을 다시 체포하기 위해 일생을 보냅니다.

그도 변화를 갈망합니다.

선한 일이 가득한 사회, 곧 도둑, 속임수, 부패 없는 사회를 열망합니다.

하지만 그의 세계에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은혜입니다.

그의 사전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삭제되어 있었습니다.


(후략)